서울대학교 미술관, 튜링 테스트: AI의 사랑 고백 展
2022년 03월 24일 – 2022년 05월 22일
전시실1-4
전시부문: 회화, 영상, 설치 등 90여 점
참여작가: 노진아, 문성식, 박관우, 서울오픈미디어(권병준, 백주홍, 김택민), 이덕영, 이샛별, 이재석, 임동열, 전보경, 정승, 홍세진
http://snumoa.org/exhibitions_view.php?exh_id=151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2032993681

 

인공지능과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의 활주로에서

가상의 고대 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에는 완벽한 지도를 만드는 데 강한 집착을 가진 사람들의 길드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실제에 가까운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점점 더 큰 지도를 만듭니다. 지도는 실제의 100만 분의 1, 10만 분의 1, 다시 1만 분의 1의 척도로 확대되다가, 종국에는 제국의 모든 지점들이 완벽하게 1대1로 대응되는 지도를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 지도가 현실을 뒤덮어 또 하나의 현실이 되자 사람들은 어느 것이 진정한 실재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그 완벽한 지도는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쓸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지도는 더 이상 지도가 아니다.”

보르헤스의 단편에 나오는 지도학자들은 점점 더 휴먼을 닮아가는 디지털 휴먼, 인간을 쏙 빼닮은 인공지능을 만들고자 하는 오늘날의 과학기술에 대한 비유로서 적절합니다. 인간은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의 도래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컴퓨터 과학자들에 의하면 2040년 즈음, 인간의 지능은 인공지능에 추월당할 것이라 합니다. 노동을 비롯한 인간의 일상은 이미 빠르게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중입니다. 오진율 제로인 인공지능 의사에, 심지어 사랑도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위험한 노동이나 전쟁도 로봇 신체를 지닌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강(强)-인공지능’, 즉 인공지능에 유전공학, 나노기술이 적용된 신체로 현저하게 진화된 신인류, ‘인간강화(human enhancement)-종’으로 스스로 진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구분이 폐기될수록, 질문은 다시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소급되고 더욱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도 종국에는 보르헤스의 ‘완벽한 지도’와 대동소이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 결말만큼은 1대1로 대응되는 지도의 쓸모없음을 능가하는, 훨씬 더 무겁고 어두운 것일 공산이 큽니다!

이 전시가 개막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침범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현 과학기술은 인공지능이 인간 병사를 대신해 전쟁을 치르는, 그러니까 상대방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살상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없는 미래에 대해서는 왜 상상하지 않는 것인가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오류를 줄이는 쪽으로 진행될지, 획기적으로 증폭시키는 쪽으로 진행될지는 결국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건 강-인공지능이건, 인간의 작품이기에 결국 인간의 오류를 재현하거나 증폭시킬 개연성이 상존한다는 반성적 성찰의 크기에 달린 문제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다시 자신을 둘러싸고 위협하는 신화들 또는 우상들, 이념, 국가, 자본, 기술 등과의 치열한 싸움에 변함없이 나서는 인간의 몫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질문은 다시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소환되고,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생텍쥐페리의 말을 기억해봅시다. “단순함의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게 남아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완성된다.” 단지 인간의 욕망을 재현하는데 과학기술이 고삐를 죌 때, 인공지능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예술이 이제껏 인간으로서 해온, 인간을 위해 해온 싸움을 지속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새삼 확인합니다. 이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의 사유야말로 이 소중한 싸움이 진행되는 현장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