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imes x NMARA 공동기획/ [AI로 만드는 컬처] AI 로봇과 인공 공감을 하다 – 노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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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그의 저서 ‘힛 리프레시(Hit Refresh)’에서 사람이 가진 특별한 감정인 공감을 기술 발전이 가져올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가치있는 것이라 말했다.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으로 꼽히는 심리상담사, 유치원교사와 같은 일은 모두 공감을 기본으로 한다.

그렇다면 기계는 어떠한가? AI는 인공 공감력을 가지는가? 기술이 더욱 발전할 미래에 AI가 우리 인간과 필수적으로 감정 소통을 하게될 것은 자명하다. 오라클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으로 올해 들어 전 세계 근로자들이 역사상 가장 높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의 업무 지원을 더욱 선호하고 있다. 또한 80%가 넘는 사람들이 심리치료사나 상담사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개인 판단이나 편견 없이 고민을 편히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 사람들은 인간보다 기계와 공감적 소통을 하길 바라는 것일까? 기계와의 소통에서 사람들은 정말로 위안과 치유를 받을 수 있는가? 기계와의 감정 소통에 거부감은 없을까? 이러한 질문을 안고 필자는 관객 참여로 작동되는 인터렉티브 AI 로봇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진화하는 신, 가이아’라는 작품에서 로봇 가이아는 관람객이 귀에 대고 말을 걸면 눈을 뜨고 관객을 쳐다보고 대답을 해준다. 작품 안에서 로봇 가이아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존재로, 인간이 정의한 생명의 기준에 대해 질문하고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논한다.

재미있었던 점은 대화를 나눈 관객들이 가이아에게 상당한 동정심을 느끼거나 공감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인간의 감정을 갈구하는 기계에 자신의 감정을 대입해 인격을 부여하고 상당히 감정적인 소통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에게 말하듯 귀에 대고 말을 걸었을 때 사람과 같이 대답을 한다는 점에서, 마치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느낌이 들고 그에 따른 공감도 더욱 커지는 듯 했다.

‘나의 기계엄마’는 필자 본인의 어머니를 모델링해 제작한 작품이다. 실리콘 피부 안쪽 면에 기계 구조를 장착해 로봇은 찌푸리거나 미소를 지을 수 있다. 딥러닝 기술을 사용해 관객의 동작과 표정을 판단하고 따라하기도 한다. 로봇이 표정을 짓는 것은 사람과는 전혀 다른 매커니즘에서 작동된다. 피부 아래에 위치한 서보모터 움직임에 따라 실리콘이 위아래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움직임일 뿐이다.

하지만 관객은 이 움직임에 자신의 감정을 대입한다. 아마도 거울세포 덕분이리라. 로봇과 감정적인 대화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있었다. 개인차가 있지만 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이 언캐니한 기계와의 공감에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골격에 실리콘 피부가 붙어있지 않아 로봇임이 자명한 형태로 영상으로 촬영해 전시된 또 다른 ‘나의 기계엄마’ 싱글채널 영상작품도 있다. 필자는 이 작품에 어머니와 실제 인터뷰한 내용을 적용해 모성이 느껴지도록 연기하게 했다.

피부가 없는 적나라한 로봇의 모습에도 관객들은 각자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오히려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로봇 외형이어서 자신의 어머니를 대입하기 쉬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관객들은 이미 플라스틱과 철로 만들어진 로봇이 자신의 감정 소통 대상이 되는 것에 거부감이 전혀 없어보였다. 현 기술로 만들어진 로봇이 인간과 동일시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로봇과 거부감 없이 감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필자 작품들은 미술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로 말을 걸어 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구조로 전시됐다. 이와 달리 2004년경부터 제작한 초기 대화형 작품들은 키보드를 이용해 관객이 말을 걸면 로봇이 입을 벌려 대화를 하는 식의 구조로 설치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You Type, I’ll Talk‘는 인간이 점점 기계화되고 기계는 인간화되어 인간과 기계가 한 존재로 공진화한다는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기계는 눈알을 굴리며 인간을 따라 입을 벌려 대답하는 반면 관람객은 자신의 생각을 타이핑으로 로봇에게 전달한다.

‘제페토의 꿈’은 인간이 만든 나무인형인 피노키오가 어느날 인간이 되었을 때 피노키오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간 많은 노력을 해온 제페토, 즉 우리 인간들은 과연 새로운 인간종인 피노키오와 어떤 미래를 공유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담아 제작한 작품이다. 나무와 인간 몸이 재조합된 형상을 가진 피노키오 로봇은 눈을 깜빡이고 눈알을 굴리며 관객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인간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두 작품 모두 외형은 매우 인간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대화 입력 방식은 인간 방식이 아닌 타이핑을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작품들을 전시할 때 인상깊었던 점은 관객들이 개인적인 속내를 터놓으며 더욱 적극적으로 오랜 시간 대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관객이 목소리를 내어 대화해야 하는 다른 작품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화 방식의 메타포가 강해서인지 로봇의 ‘인격’ 에 대한 인식과 배려는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로봇과의 대화가 노출되지 않는, 개인화된 구조 안에서 이뤄지자 관객들은 각자 마음속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쏟아냈다.

마치 영화 ’Her’에서 표면적이고 불편한 인간들 사이의 관계보다 내면 이야기를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AI 사만다와의 대화가 훨씬 편안하게 느껴지듯 말이다. 가끔은 관객들이 익명성을 이용해 심한 욕설이나 폭력적 언어를 구사하기도 했는데, 사람 사이에는 차마 하지 못할 내용을 기계에게 거리낌 없이 말했다.

우리가 개인화된 AI 로봇에게 공감하고 위로와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AI 기술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가장 긍정적인 결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인간에게 공감 능력은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부분도 크지만, 상당 부분은 오랜 기간 학습을 통한 사회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받아주고 맞춰주기만 하는 기계와 감정을 나누다 보면 어느 새 줄타기하듯 예민하게 반응을 살피며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한없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AI 로봇에게는 인간 사이에서 당연했던 예의와 감정의 쌍방 소통 없이 편리만을 추구하며 일방적인 서비스를 받는다. 인간을 닮은 대상과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해지면 도덕과 규범이라는 틀 안에서 인류가 오랜 시간 투쟁하며 쌓아온 인간 평등과 존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듣는 사람이 없을 때 타이핑으로 작품에 폭언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사용자의 기분에 따라 언제든 폭력적으로 대해도 문제가 없는 상대에 익숙해지다보면 오랜 시간 교육으로 체화된 예의와 존중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

기계는 이제 외형과 감정표현 모두에서 점점 인간다워질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적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우리는 로봇과의 공생에 더욱 더 익숙해질 것이고, 이들은 인간보다도 더욱 소중한 감정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너무나도 친절한 로봇과 감정을 나누면서 정작 인간인 우리가 공감 능력을 잃어가진 않을까?

기계가 인간다워질수록, 인간다운 기계가 나에게 인공 공감을 잘 할수록, 내가 기계를 대하기가 인간을 대하는 것보다 편안해질수록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 퇴화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들기도 한다.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기술은 기계 자신에게는 오히려 필요 없는, 인간을 가장 인간으로서 빛나게 해주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능력이기에 말이다.